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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 참다 터진 ‘일본판 피플 파워’ [중앙일보]

파벌·세습정치에 염증 … 54년 간 쌓였던 불만 폭발
정권교체를 넘어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 로 변화

입력시각 : 2009-09-01 오전 3:29:25

흔히 일본인들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간혹 잘 참다가도 폭발하면 크게 뒤집어 놓는다. 대표적인 것이 1868년 막부를 무너뜨린 메이지(明治) 유신이다. 8·30 총선도 마찬가지다.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국민이 자민당 정치에 분노를 표출했다”고 말했다. 패배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도 “유권자들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했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자민당 54년 장기 집권의 병폐에 참고 있던 일본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시게무라 도시미쓰(重村智計) 와세다(早稻田)대 교수는 이번 정권 교체를 ‘일본판 피플 파워’로 풀이했다.

일본 유권자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뒤집어 놓은 정치판은 1955년 이후 변화를 거부해온 구시대의 유산이다. 일본 특유의 전근대적 정치를 잘 설명하는 말은 ‘세습’이다. 부모의 지역구를 자녀가 물려받아 당선된다. 정치가 가업(家業)이다. 자민당에 유난히 많아 올 7월 해산 직전엔 32%에 달했다. 지역구 인맥을 의미하는 ‘지반’, 정치 명문가 출신이라는 ‘간판’, 자금력을 의미하는 ‘가방’ 등 세 개의 정치적 기반을 의미하는 ‘3반(三盤)’이 없으면 정치 등용문에 얼씬하기 어려웠다. 이런 폐쇄적인 정치 환경 속에 정계 ·관계 ·재계 가 손잡은 ‘철의 3각 관계’가 자리 잡았다. 부패와 무능을 품고서도 변화를 거부할 수 있었던 단단한 지배구조다.

일본 유권자들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자민당이 독점하는 구시대적 정치구조를 참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적 국제정치질서가 울타리가 되어 주었고, 눈부신 경제성장이 불만을 해소해주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냉전질서가 무너지고 일본의 성장엔진이 식기 시작한 90년대 초부터다.

93년 자민당이 제1당이면서도 야당 연합에 정권을 잠시 빼앗겨야 했던 것도 이런 유권자들의 변화 욕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당은 내분으로 10개월 만에 무너졌다. 실망한 유권자들은 다시 자민당의 자체 개혁에 기대를 걸었다. 2005년 고이즈미 총리가 자민당 개혁을 내걸고 총선에서 대승했다. 그러나 그 역시 개혁에 실패했다. 그의 후임 총리 3명은 모두 국민을 실망시켰다.

참을성 많은 일본 유권자들이 이번엔 폭발했다. ‘변화’를 내건 민주당에 몰표를 던졌다. 유권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었 다.

이용철 와세다대 교수는 “대부분 나라에선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지만, 일본의 민주주의는 패전 후 미군에 의해 제공됐다”며 “이번에 ‘아래서부터의 변화’가 이뤄지면서 일본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번 총선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일본 정치 체질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다. ‘국민에 군림하던 정치’가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로 탈바꿈할 전기다.

이번 총선은 그 자체로 선거혁명인 동시에 앞으로 이어질 정치혁명의 출발점인 셈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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